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1장

서른 일곱살,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기체가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함부르크 공항에 내리려는 참이었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둡게 적시고, 비옷을 입은 정비사들, 밋밋한 공항 건물 위에 걸린 깃발, BMW 광고판, 그 모든 것이 플랑드르파의 음울한 그림 배경처럼 보였다. 이런, 또 독일이군.

비행기가 멈춰 서자 금연 사인이 꺼지고 천장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8장

"가끔 세상을 둘러보다가 넌덜머리가 나. 왜 이 인간들은 노력이란 걸 하지 않는거야, 노력도 않고 불평만 늘어놓을까 하고."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나가사와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내가 뭘 잘 못 본 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게 아냐. 노력이란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



8장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십이삼 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어떤 화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 갔고 저녁에 근처 피자 하우스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피자를 씹으며 기적처럼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내 손이며 접시며 테이블이며 눈이 닿는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것처럼 새빨겠다.



10장

뭐가 옳은지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그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말고, 이러면 행복해질 것 같다 싶으면 그 기회를 잡고 행복해져요.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기회란 인생에 두 번 아니면 세 번 밖에 없고, 그것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게 돼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며 도대체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은 어떤걸까?하며 찾아 들어봤다.

일단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의 가사와 음악을 음미해 보는게 좋겠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나는 한때 한 여자를 알았지. 아니, 그녀가 한때 나를 알았다고 얘기해야 할지도 몰라.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보여주며 말했네. ‘좋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내게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청하면서 어디에든 앉으라고 말했네. 

  그래서 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난 양탄자 위에 앉아서 시름을 잊고 그녀의 포도주를 마셨다네. 우리는 두 시까지 얘기했어. 

  그녀는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해요.’라고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일해야 한다고 내게 말하며 웃기 시작했다네. 

  나는 내일 일을 안 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면서 잠자리에 기어 들어갔다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네. 그래서 난 불을 지폈지. 좋지 않아? 노르웨이 숲에서.



이렇게 비틀즈의 노래까지 찾아 듣고 나니 더욱 이해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비틀즈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검색을 통해 좀 찾아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작품이, 역시나 이 노래를 소설적 모티브로 지필하게 되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비틀즈의 노래를 끝까지 듣는다면 정말 이해가 될테고, 극중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와타나베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인물들 역시 각자 살아가는 인생이 이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읽고 나서는 뭔가 허무하면서, 하루키의 작품인데 끝이 왜 이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읽고나서 읽을때 좋았던 부분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역시 하루키!하며 하루키의 필력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어투들에 다시 빠져들게 만들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을 선명하게 포착한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네이버 책소개에는 적혀있다. 딱 맞는 소개가 아닐까 싶다. 고독과 청춘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순 없을 것 같다.


1Q84 3권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3권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3권 '아오마메'편 중에서

긴장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경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든. 

한번 늘어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워.

일단 집중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주의 깊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한두 가지 실수를 범하게 돼.

고독은 산이 되어서 사람을 갉아먹어.


1Q84 3권 '덴고'편 중에서

그 고통의 시기는 정말로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까.

그즈음 우리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격렬한 희망이 넘쳤다.

그 길었던 고난의 날들이야말로 우리에게 단단한 결속을 가져다준 것이다.

설령 어딘가 다른 별에 가게 된다해도, 우리는 분명 서로를 금세 친구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1Q84 3권 '우시키와'편 중에서

만일 덴고와 아오마메가,

스무 살을 넘긴 시점에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면, 자신들이 수많은 고통점을 가졌다는 것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말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남녀로서 강하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정경을 우시카와는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숙명적 해후.

궁극의 로맨스.


1Q84 3권 '우시카와'편 중에서

이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더이상 잃을 건 아무것도 없다.

내 목숨 외에는.

아주 간단하다.

어둠 속에서 우시카와는 얇은 칼날 같은 웃음을 지었다.


1Q84 3권 '덴고'편 중에서

정말 기묘한 세계로군.

어디까지 가설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져.

이봐 덴고,자네는 소설가로서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겠나?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


1Q84 3권 '덴고와 아오마메'편 중에서

그것이 이제 막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밤의 깊은 광휘를 급속히 잃고, 하늘에 걸린 한낱 회색 오려낸 종이로 변할 때까지.


총 3권 중 마지막 3번째편이었다.

3권까지 읽어올때까지 덴고와 아오마메는 과연 만나게 될 것인지,

서로를 알아보게 될 것인지 두근거리며 둘 사이를 지켜본 것 같았다.

평행선 상에 존재할 수 밖에 없었고, 영원히 접점을 찾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

이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점점을 말하는 건 아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고 바라왔던 그런 꿈이나 목표로 대입해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Q84 1권 / 무라카미 하루키

원제: 1Q84  ichi-kew-hachi-yon 4月~6月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むらかみはるき, 村上春樹, Murakami Haruki)

   - 주요저서 : 상실의시대, 노르웨이의 숲, IQ84 등.




1Q84 1권 '아오마메'편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1Q84  1권 '덴고'편 중에서

'디킨스의 런던을 비추는 달, 그곳을 배회하는 인세인한 사람들과 루나틱한 사람들.

그들은 비슷비슷한 모자를 쓰고 비슷비슷한 수염을 기르고 있다.

어디서 차이를 찾아야 좋을까?

눈을 감자 덴고는 지금 자기가 어떤 세계에 있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지난번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리뷰를 썼던적이 있다.

그때의 작품은 1~2권으로 나뉘어진 해변의 카프카를 모두 읽고 리뷰를 썼었지만 이번엔 총 3권의 책 중 1권만 읽었지만 리뷰를 남겨본다.

왜일까?

그만큼 한권한권 읽을때마다의 느낌을 적어나가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1Q84.. 제목이 1Q84라니... 내가 1984라는 숫자를 잘못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아직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조지 오웰의 1984와도 물론 혼동이 됐었다.

하지만 1권만 읽었을뿐이지만 왜 1Q84라 제목을 명명했는지 알게 해줬다.

그 궁금증을 풀어준 것만으로도 1권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것 같다.

하지만 1권은 단순히 도입부로서의 역할만 하는것은 아니다.

역시나 하루키의 필력답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고, 어서 2권을, 3권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아오마메, 덴고 라는 식으로 2가지로 구분했을땐 뭐지? 싶었지만,

이역시 탁월한 이야기 구성...

이 책의 스토리를 짧게 요약해 소개하고 싶지 않다.

왜냐고? 꼭 읽어봤으면 하기 때문이다.

감성돋는 책, 에세이, 수필, 이런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알랭드 보통도 별로인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특히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류였다.

하지만 지난번 해변의 카프카 이후로 1Q84역시 꼭 읽어보길 바라는 책중에 한권이 되고 말았다.

이제 2권의 내용을 기대하며 생활인으로서 하루를 보내본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나의 경쟁상대는 과거의 나" >

 

 

- 무라카미 하루키 -

 

 

저는 자신을 의식하고 늘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애씁니다.

 

달리기에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저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저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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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속담에는

'참된 위대함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는데 있다"

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현대사화는 남뿐만 아니라 친구까지도 경쟁자로 삼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은 자칫 파멸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자신과의 경쟁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스스로를, 어제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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